
ㅁ 2009년 한 고고학 학술지에는 1만 4천년된 지도에 관한 논문이 실렸다. 스페인의 고고학자들이 스페인 북부의 한 동굴을 탐사하다가 신석기 유물 600점과 함께 발견한 지도는 돌멩이에 새겨져 있었다. 이 돌멩이 지도를 발견한 것은 실제 15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이 돌멩이가 정말 지도인지 아니면 그림인지 낙서인지 근거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다시 논문으로 만드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ㅁ 신석기 돌멩이 지도는 정말 지도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고고학 발굴팀은 돌멩이 지도에 나온 지형과 지리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지도에 표현된 동일한 위치와 지형을 찾아냈고 해당 지역의 표고지도, 사진, 주변 강물과 습지의 분포가 돌멩이에 표현된 것과 일치함을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이 지도에는 산봉우리, 강물, 습지, 숲에 관한 정보만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요즘말로 이 지도의 주제는 '지형도'일 것이다. 그러나 이 지도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고 가장 확실하게 그려져 있는 '주제'는 다름 아닌 '사슴'과 '순록'이었다. 다시 말해, 이 지도는 지형과 지리가 중요한 주제가 아니라 그 배경과 소재일 뿐, 가장 중요한 주제는 바로 '먹을거리'에 관한 것이다. 즉, 당시 신석기인들에게 절대절명의 주제인 먹고 사는 문제, 경제에 관한 것이고 그것은 곧바로 생존과 생명을 위한 주제도였다.
ㅁ 오늘날 GIS 분야에 종사하는 우리에게 1만4천년된 신석기 돌멩이 지도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첫째, 역사 이래 지도는 먹고사는 문제 - 경제에 관한, 생존에 관한, 인간의 집단이 살아갈 방도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기 위한 차원에서 지도가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사냥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ESRI의 웹싸이트에 들어가보면 현재 GIS가 어느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지 근황을 알 수 있다. 국방, 행정, 환경, 경제, 교통, 도시-건축, 에너지, 유통, 물류, 교육, 의료 등 사회 전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GIS 종사자들에게는 각각 참여하고 있는 해당 분야에서 가장 절실한 현실문제를 해결하는 방향 속에서 '지도'를 다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스페인의 동굴에서 함께 살던 신석기인들은 왜 지도를 만들었을까? 물론 사슴과 순록이 어디에 자주 나타나는지 사냥을 하기 위한 정보를 기록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록'이냐 '정보공유'이냐의 차이이다. '기록'이라면 신석기 유물이 발굴된 수많은 동굴에서 발견된 '벽화'와 크게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지도'는 '그림'의 하나이지만 그냥 '그림'은 아니다. 그것은 '정보'를 품고 있는 특별한 '그림'이다. 즉, 지리와 공간에 담겨있는 의미있는 정보를 어딘가에 새겨넣은 것이다. 새겨넣다는 것은 요즘말로 디지타이징(Digitizing)과 유사하다. 컴퓨터 파일에 지리정보를 새겨넣어 Shape File을 만드는 것이다. 컴퓨터가 없던 신석기 시절에는 컴퓨터 대신 자주 사용하는 돌멩이에 다른 뾰족한 돌칼로 새겨넣었을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제작'의 목적이 바로 '지리정보의 공유'에 있다는 점이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보공유 이후 그것을 사냥하기 위한 의사결정용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혼자 사슴과 순록이 자주 나타나는 장소를 알고, 그 정보를 혼자 먹고 사는 것으로 해결했다면 자신의 머리 속에 기억으로 혼자 보관했을 것이다. 그러나 집단생활이 기본이던 신석기 시대에 '돌멩이 지도'를 만들어 공공의 장소에서 다른 동료들도 들여볼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은 바로 여러 사람의 지리공간정보를 취합하여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의 정보로 활용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ㅁ 신석기 돌멩이 지도에 대해서 대영박물관 지도전문가는 엄격한 의미에서 그 돌멩이는 '지도'가 아니라고 했다. 고고학자들은 그것은 분명히 지도라고 주장한다. 엄격한 의미에서 '지도'의 기준이 방위가 그려지고, 축적이 들어가고, 범례가 표현되는 것일까? 만약 이런 기준이 형식과 형태에 대한 것이라면 GIS를 직업으로 삼고 있고 GIS 분석을 전문분야로 선택한 나에게는 이 신석기 돌멩이는 '지도'임에 틀림없다.
왜인가? 첫째, 그것은 분명 지리정보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지도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를 충족시킨다. 둘째, 당시 공동체가 가장 절실하게 풀고 싶었던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더 높아진다. 셋째, 그 돌멩이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되물어보면 바로 공동체의 공간정보와 지리경험을 하나로 모으고 체계화하여 다른 사람도 읽고 판단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치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바로 지리공간정보의 기록, 저장, 관리, 분석, 소통, 의사결정, 목표실현에 적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돌멩이 지도는 찰흙지도, 거북이 등껍질 지도, 양가죽 지도, 동판지도, 종이지도를 거쳐 오늘날 컴퓨터로 기록, 저장, 관리, 분석, 소통되는 GIS로 이어져왔다. GIS에 종사하는 우리에게 신석기 돌멩이 지도는 인류가 문자를 갖기도 전부터 당시 인류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과제를 풀어주는 방향을 제시하고 실용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수준에서 사용되었음을 기억하도록 한다. 그리고 묻는다. 지금 우리가 취급하는 지도는 작은 조직에서, 기관에서, 연구실에서, 부서에서 나아가 삶의 현장과 더 넓은 공동체 속에서 가장 실질적이고 중요한 문제를 풀어내는데 사용되고 있는가하고 말이다.
신석기 돌멩이 지도의 위상처럼 지도 그 자체, 그래서 당연히 GIS 그 자체는 기술적인 문제에 갇히지 않고 그것을 만들고 사용하는 사람의 관점, 의지, 열정, 역량에 의해 그 쓰임새는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1만4천년된 돌멩이 지도에서 크게 배우게 된다.